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태도는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 일할 때는 더 중요하다. 회사에서는 이 것이 곧 평판이자 업무 실력이 되기도 하고, 고객을 얼마나 배려할 수 있느냐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현재의 커리어와 전혀 무관한 건축학 전공이 나름 이 일에 도움이 되는 이유도 같다. 어떤 학문보다 사람 신체 치수와 행동반경, 어떤 공간을 편하게 느끼는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게 할 것인지를 밤을 새워서 고민하고 과제를 한다. 대부분의 시간은 고민만 하다가 답을 얻지 못하고 부리나케 과제를 마무리하고 교수님께 크리틱으로 깨지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그 것을 고민하는 시간,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라는 감각이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저 사람은 이 데이터를 왜 보는지, 이 데이터를 본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 많은 정보 중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를 알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적의 디자인을, 사용자가 가장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결과물을 제안하는 것.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 친화적인 태도를 망각하는 순간도 많다. 아무래도 기술적인 우위(?)에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너무하다 싶은 정도의 기초적인 질문들을 반복해서 받을 때가 그렇다. 좋은 기획자이자 유능한 직장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며, 그런 불편함을 사용자 중심에서 해결 방법을 모색하겠지만, 아직 나는 친절함의 레벨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오늘 퇴근하면서 회사 앞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든 생각이다. 갑자기 왜 이런 재미없는 생각이 들었냐고? 핸드폰 식권앱으로 결재하고 구두로 주문해서 번호표가 없는 나를, 키오스크 주문한 고객처럼 나도 모르는 204번이라 부르는 무심함에 기분이 묘하게 안 좋았기 때문이다. 맞다. 쫌생이 진상 고객이 투덜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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