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에는 신경쓰이는 직원이 하나 있다.  팀장이 이렇게 신경을 쓰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 직원도 회사생활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직원이 신경쓰이는 이유는 여럿이 있다.

1. 본인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만 해결사처럼 팀 사람들을 활용한다. 팀장인 나에게도 같은 태도로 보고를 하지 않고, 일을 혼자 처리하는데, 주간회의 때는 그럴싸하게 한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막상 결과물을 까 보면 제대로 해 놓지 않은 경우가 50% 이상이다. 그래서 그 친구의 결과물과 말을 믿기가 어렵다. 이제 곧 햇수로 4년차, 개월로 따져도 근무한지 30개월이 넘어가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볍게 처리할 업무 외에는 문제해결형 과제를 맏기기 어렵다.

2. 일을 진행하기 위한 본인의 방향이 없이 일을 한다. 아침 스크럼 때, 일의 방향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유는 이렇다 라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줘도 본인이 협업해야하는 타 팀 실무자에게는 "팀장님이 이렇게 하래요." 라며 말만 전한다. 나에게, 혹은 팀 선배에게 문제를 들고 올 때도 본인이 하려는 것과 해봤는데 어려웠던 점 그래서 조언을 구하는 질문을 정리하지 않은 채, 단순히 "이거 안되는데 어떻게해요?"라는 류의 질문이 많다.

3. 상대방의 문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팀은 각 부서에서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를 가공해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분석을 하고 싶은지를 이해하는 것이 업무의 가장 기초이다. 그런데, 업무 요청자와 협의해서 내용을 확인해보라고 하면, 무슨 분석을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은 없고 단순히 "데이터를 이렇게 해달래요." 라는 내용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4. 경쟁적, 혹은 본인보다 낮은 직급 혹은 실력의 직원을 하대하는 경향이 있다. TF로 프로젝트를 할 때, 타 팀에 약 1년 6개월 정도 후배지만 나이는 많은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그 신입사원에게 약간은 비아냥 거리는 말투로 대한다거나(본인은 장난이었을 수도 있으나, 상황 상 맥락에 맞지 않았다) 팀에 들어온 선배인 경력사원이 SQL을 잘 모르자 무시하는 말을 공격적으로 하거나 한다. 일례로 둘이 같이 타 팀에서 요청한 작업을 한 명은 분석 레포트를 완성하는 역할로, 이 신경쓰이는 친구에게는 데이터를 가공해서 처리하는 역할로 맡겼었는데, 본부 전체에 공유할 목적으로 프로젝트 리뷰를 쓰라고 했더니, 온통 혼자 일 할 때보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서 힘들었다는 내용만 적기도 했다.

오늘도 2번 이유로 싫은 소리를 했다. 오류가 발생한 배치를 확인해보라고 했는데, '다시 재실행 했을 때 문제가 없어서 이유를 모르겠다. 근데 과거에도 비슷하게 이유없이 실패한 적이 있었다. 원인은 모르겠다. ' 라는 내용을 나에게 구두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본인이 생각한 대안은 무엇인지가 전혀 없이 '다음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은데 난 모르겠어요.'가 결론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의 입장에서 본 그 친구의 문제점이다. 그런데, 가장 마음이 껄끄럽고 불편한 것은 내가 이 친구를 첫인상 효과로 계속 낙인을 찍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분명 좋은 점들도 있다. 단순한 일들은 고민 없이 빨리 빨리 하긴 한다. 전표를 쓰는 거라던가 하는 것들. 그리고 잘 웃긴 한다. 본인이 실수를 하거나, 대책없이 "어떻게요?"하는 질문을 할 때도 웃어서 화나긴 하지만, 어쨌든 웃음의 리액션은 좋아서 분위기를 신나게 띄우는 역할을 종종 한다. 

"이 친구가 퇴사해서 이 친구 없이 팀이 운영된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을까?"를 생각하면 사실 일손이 많이 부족해지기는 하니, 아쉽더라도 있는 것이 팀에 도움은 된다. 그리고 이 친구가 나가고 다른 신입이 들어온대도 더 나을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 어찌되었던 우리 팀원이니 사랑(?)으로 데리고 지내야 하는데, 나는 참 그게 어렵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은데 별로 좋지도 않은 사람과 잘 지내려니, 이 나이 먹도록 성품이 아직은 한참 멀었나보다.

  어느 회사나 개발자가 안된대요. 혹은 개발하려면 순서를 기대리래요 같은 불만이 부서들에 쌓인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의 정도가 정상적인 수준인 것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 수준인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다. 내가 보기엔 우리 회사는 좀 심각한 것 같은데, 상황을 개념적으로 큰 그림에서만 생각하시는 C레벨이나 HR 부서는 그냥 다른 회사 다 비슷하지, 그리고 오히려 우리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 특정 부서와 그 동안 개발해서 런칭한 내부 시스템을 갈아엎자는 제안을 하기 위한 모종의 작전 회의를 했다. 유저 사용자 현황이 현저하게 나쁜 상황이다. 아마 일반 앱이었다면 유저들이 한번 쓰고 화나서 지우는 수준일 정도. 나도 그 프로젝트에서 방향을 제안하는 의견을 많이 제시했고, 말도 안 된다고 계속 이야기했으나 설득에 실패하여 태블로를 활용해서 모든 프런트 페이지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얼마 안돼서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보고서를 태블로 서버 화면을 통해서 쓰고,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입력/수정 처리해야 하는 기능을 태블로에서 구현해서 실시간 기능이 깨졌다. 태블로 라이브로 해도 화면에 실시간으로 즉각 반영되지는 않는다. 데이터원본 새로고침을 해야 반영이 된다. 우리 케이스는 가져와야 하는 데이터 양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라이브 연결도 실패했고 일 배치 처리로 반영하고 있다. 당연히 사용자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태블로로 구현된 시스템은 처음부터 틀렸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서 실시간성과 보고서 작성을 위한 에디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만들어진 태블로는 활용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시스템에 임베드해서 활용하면 된다. 문제는, 이 당연한 일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 개발자가 없어도 너무 없다. 외주 개발업체와 개발하려고 해도 이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끌고 나갈 PO도 없다(우리 회사에는 PO 역할이 없고, 일부 역할을 UX팀이 담당하는데, UX팀이 하는 프로젝트는 디자인이 필요한 브랜드 업무에 한정적이다.) 나는 올해 CRM도입 프로젝트 PM이라 이 프로젝트의 PO를 감당하긴 힘들고, TF에서 같이 개발한 직원도 PO는 커녕 개발 PM도 감당하기에는 아직 업무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작전 회의는 어쨌든 결론을 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잊어버리고 내가 해야하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쁜 일주일이 끝나가고 있다. 연속된 회의 시간을 맞추느라 사무실을 혼자 뛰어다녔다. 바쁘다는 건 어쨌든 뭔가 괜찮은 느낌을 들게 하는데, 팀장이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건지는 조금 걱정은 된다. 혼자만 원맨쑈를 하고, 팀원들은 심드렁한지도 모르는 시간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다가도 문득 스타트업에서는 가장 바쁜 게 말단 사원이 아니라 대표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름 괜찮은 리더인가 싶기도 하다. 아직 감을 못잡고 있다.

  이번 주 독서토론에서 들은 말이 있다. 책 내용 중, 일이 힘들고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근무여건이더라도 성장, 성과를 체감하고 있으면 보상이 된다는 부분에서 나는 우리 팀원들에게 성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팀을 만들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요청하는 데이터를 가공해 주고, 대시보드 작업을 도와주거나 제작해 주는 부서다 보니, 성과라는 것이 모호한 부분이 있다. 무작정 많이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좋은 성과를 낸 것이냐고 하면, 몇 번 사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로 인한 부하도 많기 때문에 그것을 성과라고 하긴 어렵고, 직원 개개인의 수준이 상승되었는지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누가 얼마나 접속해서 활용하는지도 마찬가지이다.(왜 어려운지는 굳이 적진 않겠다.)

  같이 토론하시던 분께서 좋은 팁을 주셨는데, 대외적인 발표 자리에서 성과 발표를 시켜보라는 것이었다. 발표하는 것 자체에는 불만이 많이 있어도 그 내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회사 생활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더라는 이야기셨다. 우리 팀원들이 야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할 일이 쌓여있으니 정말 일다운 일 외의 부수적인 것들(사례발표 준비 같은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그 일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도 바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팀에서 진행하기로 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프로젝트 보고로 준비해달라고 팀원에게 이야기했다. 나의 의도대로, 이 기회가 그 친구에게도 좋은 영향을 받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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