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팀으로 오면서 좋은 점 하나는 회사 전산 시스템의 논리를 알 수 있는 지도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논리 체계를 대부분 이해할 때까지는 아직 많은 것을 더 들여다보고 공부해야하지만, 논리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해야하는 역할과 그 가능성이 확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 해결 관점에서 개발자가 아닌 내가 IT부서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하는지 말이다.
어느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회사도 인력관리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업무 메뉴얼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5~10년차 정도 되면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처우를 받기 위해서 이직을 한다. 특정 시스템을 홀로 담당하던 선임이 그만두면 연차가 어린 사원들은 인수 인계나 업무에 대한 사전 파악을 할 겨를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듯이 수 많은 문제 상황을 혼자 부딪치고 고군분투하면서 일을 해나가게 되는데, 과거에 하던 일을 누군가에게 안정적으로 넘기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한 것도 아니어서 결국 본인 담당인 업무는 늘고 일은 잘 안풀리는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쨌든 고생해서 문제를 안정화시키고 나면 뭔가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 땐 개선이나 신규 시스템을 도입을 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한 것 뿐이기 때문에 특별한 보상은 거의 없다. 이렇게 지낸 사람은 결국 몇 년 지나서 5~10년차가 되면 지치고 회사에 대한 믿음을 잃어 회사를 떠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그룹사 통합의 하나의 전산을 여러 회사가 공통으로 쓰고 있지만,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도 각각의 회사가 다른 화면을 보면서 일하는 경우도 많고, 또 어느 회사는 아무 문제 없이 잘 활용하고 있는 기능을 다른 회사는 단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몰라서 일명 노가다로 문서작업해가면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 요청들어온 업무도 같은 상황이었다. 나도 잘 모르는 영역의 데이터 확인에 대한 일이라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했지만, 시스템 속 정보를 추출하는 쿼리를 확인하고, 해당 테이블의 데이터 목록을 보니, 요청한 데이터가 이미 연결된 테이블에 기록되는 정보였고, 단순히 표시만 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살펴보다보니, 요청하는 데이터를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화면도 시스템에 구현되어 있어서 타 부서는 활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IT부서에서 활용하는 SQL이나 시스템 개발 소스를 보는 방법을 몰랐던 예전이었다면, 수많은 부서의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하고, 그러다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얘기가 달라서 혼란스러워하면서 스트레스 받았을 일을 비교적 쉽게 해답을 얻었다.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혼선을 겪고 있을 업무 담당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회사 전체의 시스템을 지구라고 한다면, 나의 수준은 아직 동네 한바퀴 정도이지만 이 것만으로도 소소한 보람을 느낀다. 회사에서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을 때, 내가 궁극적으로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비즈니스의 구석구석에서 만들어지는 각종의 정보들을 필요에 따라 이어줄 수 있는 연결다리가 되어야 하고, 그게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정보 지도를 만드는 것이 나의 최종 업무목표겠구나'를 생각했었는데, 아주 작은 부분이더라도 그런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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